만화 이야기
1960~1970년대 제작되었던 새마을운동 홍보만화의 핵심 줄거리를
주요 인물들의 대사를 중심으로 재구성하였으며,
만화 전문의 원문 뷰어를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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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이야기
『황금의 왕』, 이관섭 씨
식량 자급국가로 만들어준 통일벼
50원짜리 동전 뒷면에는 벼이삭이 새겨져 있다. 그 벼의 품종은 무엇일까? 바로 1972부터 농촌에 보급되어 1992년까지 전국적으로 재배되었던 통일벼다. 쌀은 한국인의 주곡이지만 1970년대까지만 해도 쌀 생산량이 풍족하지 못해 서민들은 보릿고개를 겪었다. 생일이나 명절에나 먹던 흰쌀밥이 평소 밥상에 오르게 된 것은 1976년부터로, 세계적인 식물육종학자 허문회 박사가 개발한 통일벼 품종 덕이다. 통일벼는 키가 작으면서도 줄기가 두텁고 이삭이 커서 재래종보다 알곡이 많이 맺히는 개량종이다.
새마을운동이 전국을 달구던 1972년부터 정부는 농가의 소득 증산사업으로 통일벼를 보급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식량 자급 국가라는 지위를 얻었다. 새 품종 개량 전까지 통일벼는 당시 새마을사업을 성공으로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는 1970년대의 쌀 증산왕들이 있었다.
“돈을 아끼는 것은 가장 바른 일에 가장 필요할 때 필요한 만큼 쓰기 위해서입니다.”
장롱 깊숙이 숨겨놓은 상자 하나. 상자 안에 담긴 것은 낡은 작업복.
네 번, 다섯 번 기워 입어 너덜너덜한 이 작업복은 치열했던 삶의 증표이자 후손에게 물려줄 유산이다. 고향 마을에서는 내로라하는 부자이지만 허름한 옷차림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불우한 청소년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면서도 길에 떨어진 한 톨의 벼 이삭도 주워드는 사람. 그가 바로 1977년 전국 쌀 증산왕을 거머쥔 이관섭 씨다.
“이 사람아! 양돈이 잘되는데 계속하지 왜 돼지를 팔아치우나?”
“저는 농사로 성공하겠습니다. 두고 보세요.”
“앞으로 10년은 더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을 하자는 거다. 10년만.”
경기도 이천시 율면 석산리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를 책임진 소년가장이었다. 중학교 졸업 이후 품팔이, 양말장수, 땔감장수를 전전하다가 남의 집 농사를 3년간 도맡아 하면서 스스로 농사일을 깨우쳤다. 육체적으로 혹독한 시절이었지만 고생한 만큼 보답을 주는 땅의 고마움을 깨달았고 고통을 견디는 정신력을 키웠다.
1968년 군대 제대 후 그는 버려진 하천 부지를 개간했다.
모래땅이었지만 갈대를 뽑고 퇴비를 잔뜩 주고 땅콩을 심자 쭉정이 없이 자랐다. 토질이 좋은 데는 고추를 심고 모래땅에는 땅콩을, 토질이 나쁜 데는 뽕나무를 심었다. 가을이 되자 수확이 풍성했다. 그는 돼지를 사육한 값까지 합쳐 논 8마지기를 샀다. 이관섭 씨는 제사상에 땅문서를 올려놓고 절을 했다.
“거참 이상하거든, 관섭이네 논하고 우리 논은 딱 붙은 바로 옆인데 저 친구 논에서 나는 쌀은 알이 실하고 수확도 우리보다 훨씬 많단 말이야.”
“설마 저 친구가 우리 논에서 슬쩍하다가 보탠 건 아니겠지?”
“예끼, 이 사람아. 관섭이가 거저 준다 해서 받을 사람인가?”
이관섭 씨는 매년 수확한 쌀을 팔아 논을 넓히는 것이 유일한 낙이자 효도였다.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희한하게도 추수 때만 되면 그의 벼 이삭이 훨씬 굵고 소출량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땅은 받은 만큼 돌려주는 법. 그의 농사가 잘된 이유는 매일 작업일지를 쓰고, 농촌지도소와 신문‧라디오를 통해 배운 영농 교육을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결심한 바가 있었다. “술‧담배‧화투에는 손대지 않겠다, 후손에게 가난과 못 배운 것을 물려주지 않겠다, 뜻을 이루기 전에는 결혼도 안 하겠다, 논에서 나는 것으로는 땅을 사고 밭곡식으로 생활비를 충당하겠다, 옷 한 벌 사면 더 이상 입을 수 없을 때까지 기워 입겠다, 가족 간에 비밀을 만들지 않겠다.”
“이런 멍청한 사람 보게. 새마을운동이 뭔지도 모르고 아는 척하는구먼.”
“모르다뇨?”
“새마을운동이라는 것은 길을 닦는 것이여.”
“하하, 옳은 말씀입니다만 길 닦는 것만이 새마을운동이 아닙니다.”
1972년 새마을운동 열풍이 불자 그는 주민들에게 다수확 품종인 통일벼를 심자고 권했다. 새마을사업은 길을 닦는 것이라고만 여기던 이웃들은 난데없이 통일벼 타령을 하는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소득이 있어야 길도 닦고 지붕도 개량할 수 있다고 생각한 그는 홀로 통일벼를 심었다.
통일벼 품종 개량으로 유례없는 쌀 수확량을 기록한 이천군(새마을 화보, 1975년)
이듬해 그의 벼 수확량이 월등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이웃들은 너도나도 통일벼를 심었다. 그리고 농사의 귀재인 그를 새마을지도자로 추대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하던 일부 주민들은
환경개선사업에 비협조적이었다.
이관섭 씨는 이 난관을 어떻게 해결했을까.
[단행본] 『황금의 왕』 (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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