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이야기
새마을지도자들의 생생한 활약상을 통해
그들의 리더십과 당시 마을 단위별 새마을운동의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들의 리더십과 당시 마을 단위별 새마을운동의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지도자 이야기
전국에서 가장 앞선 새마을
전남 고흥군 금산면 동정리 새마을지도자 박종안 씨 이야기
엉뚱한 조합장
조합장은 확성기가 실린 지게를 내려놓고 마이크를 들었다.
“동정마을 주민 여러분, 조합장입니다.
저녁밥 드시고 조합으로 오세요. 보리 재배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뭔 소리여. 이제껏 보리농사 잘만 지어왔는디…….”
“긍게. 배운 양반이람서 어째 만날
도시락 싸들고 댕기면서 선동질이당가?”
주민들은 지게에 확성기를 싣고 다니면서 ‘선동질하는 배운 양반’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보리를 키우는 데 특별한 비법이라도 있단 말인가? 어디 들어나 보자는 심정으로 조합장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조합장은 땅을 비옥하게 만드는 방법을 설명하고 난 뒤 동정마을은 따뜻한 남쪽 섬에 있으니 육지보다 파종을 열흘 늦출 것을 권고했다. 주민들은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으나 그의 재배법을 따라 실행해본 결과 수확량이 배로 늘어났다. 그러자 너도나도 농지를 개간하여 보리를 심었고, 그 결과 보리 수확량이 8배나 늘어 절반 이상을 육지에 내다팔 수 있게 되었다.
식민지 청년의 꿈
조합장 박종안 씨는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무렵 일본에서 농업고등학교를 다녔다. 일본인들의 멸시와 차별 속에서 그를 지탱해준 것은 고향 마을을 부자로 만들겠다는 일념이었다. 1955년 고향으로 돌아온 그가 처음 착수한 작업은 연구와 조사였다. 매일 기온을 측정하여 연중 기온의 변화를 파악하고, 환경에 적합한 재배종과 농법을 알아내기 위해 실험을 거듭했다. 그러한 노력의 첫 성과가 바로 보리 증산이었다.
박종안 씨 (1970년대 추정)
이후 산과 바다를 품은 마을의 지리적 특성을 활용하여 다양한 특산물 재배에도 성공했다. 육지에서 새마을사업이 번져가던 1970년대 초반, 이미 동정마을은 ‘잘사는’ 마을을 이루어 모범적인 사례로 알려졌다.
전국에서 가장 앞선 새마을
초창기에 귤나무 25개 품종의 묘목을 심어 내한성을 실험하는 박종안 씨를 향해 주민들은 미친 짓이라며 비웃었다. 그러나 잘 익어 노랗게 달린 귤을 보자마자 이내 그를 실력 있는 마을 지도자로 인정했다. 주민들은 귤 묘목과 재배기술을 전수받아 대규모의 귤 단지를 조성했다.
동정마을 자가발전소 (1970년대 추정)
얼마 전까지만 해도 척박한 터전을 탓하던 동정마을 주민들이었다. 그러나 마을환경을 속속들이 탐구하고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영농 지도자를 보면서 주민들의 마음에도 변화가 일었다. 도전과 실천의 중요함을 인식하자 이제까지 볼품없던 동정마을의 산과 들과 바다가 귀한 자산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2년에 걸쳐 선착장을 건설했을 때는 주민들 가운데 1만 명이 합심하여 돌을 운반하고 둑을 쌓았다. 마을에 자가발전소가 설치되어 집집마다 전기가 공급되었고, 계곡물을 이용한 수도시설이 갖추어졌다. 이러한 새마을사업은 낙후한 어촌을 근대화시켰고 공동체의 단합을 이끌어냈다.
동정마을 주민의 협동, 박종안 지도자의 헌신은
다른 지역 새마을사업에 본보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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