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이야기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동영상과 사진을 활용해
당시 시대상과 생활상, 새마을지도자 삶의 면면을 엿볼 수 있도록
가공한 스토리텔링 콘텐츠입니다.
당시 시대상과 생활상, 새마을지도자 삶의 면면을 엿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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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이야기
초가집도 없애고 마을길도 넓히고
1970년대 지붕개량 사업
정겨운 낭만에 가려진 ‘초가’의 현실
‘초가삼간’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지붕을 볏짚으로 엮은 세 칸짜리 집을 말한다. 가장 작은 집을 이르는 말로, 한 칸의 길이는 한 사람이 누우면 꽉 차는 1.82미터. 세 칸은 방 하나, 부엌 하나, 헛간 하나로 이루어진다. 소박하지만 오순도순 정다운 삶의 대명사였다. 초가지붕 위로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굴뚝, 지붕 위에 탐스럽게 얹힌 하얀 박은 고향을 그리는 예술작품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초가살이는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지붕이 썩는다는 것. 단열 기능은 훌륭하지만 눈비에 볏짚이 축축해지면 벌레와 쥐들이 꼬이고 참새도 터를 잡는다. 해마다 또는 한 해 걸러 새 이엉을 얹어주지 않으면 비가 새고 불결해진다. 화재에도 취약하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하지만 초가살이는 만만치 않다. 가장 큰 문제는 지붕이 썩는다는 것. 단열 기능은 훌륭하지만 눈비에 볏짚이 축축해지면 벌레와 쥐들이 꼬이고 참새도 터를 잡는다. 해마다 또는 한 해 걸러 새 이엉을 얹어주지 않으면 비가 새고 불결해진다. 화재에도 취약하다.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괜히 생긴 말이 아니다.
“호롱불 초가지붕이 전깃불 기와집으로”
1972년 농촌 새마을가꾸기 사업으로 초가지붕을 개량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농촌 주민들은 반발했다.
선조가 물려주신 지붕을 누구 맘대로 뜯어낸단 말인가?
가당키나 하나? 먹고 살 돈도 없는데 5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지붕을 바꾸라니.
가당키나 하나? 먹고 살 돈도 없는데 5만 원이라는 큰돈을 들여 지붕을 바꾸라니.
익숙한 주거환경을 바꾸고 싶지 않았거나, 바꾸고 싶어도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새 지붕보다는 자식을 ‘기회의 땅’ 서울로 보내 출세시키는 것이 더 큰 소망이었다. 그러나 서울은 이미 초만원이었다. 대도시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을 가라앉히려면 농촌의 발전이 시급했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시행된 새마을사업은 마을 안길 넓히기, 하천 정비, 지붕 개량 등의 환경 개선이었다.
새마을지도자와 이장이 앞장서서 마을의 지붕 개량을 이끌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1978년에는 큰 결실을 이루었다. 초기의 목표인 약 250만 동을 훌쩍 뛰어넘는 약 270만 동이 개량된 것이다.
새마을지도자와 이장이 앞장서서 마을의 지붕 개량을 이끌었다. 그리고 6년이 지난 1978년에는 큰 결실을 이루었다. 초기의 목표인 약 250만 동을 훌쩍 뛰어넘는 약 270만 동이 개량된 것이다.
“초가지붕은 상투머리, 개량지붕은 깨끗이 이발한 머리”
초가지붕의 이엉을 갈아 얹는 비용은 매년 11,000원. 10년이면 110,000원, 20년이면 220,000원이 지출된다. 그 기회비용을 따져보자. 지붕에 쓰일 볏짚으로 가마니를 짤 수도 있고 썩은새는 퇴비로 쓰거나 내다팔 수 있다. 1~5년이면 지붕 개량에 들어간 비용을 회수할 수 있다.
반면 개량지붕 재료(시멘트, 기와슬레이트, 함석)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기와슬레이트는 가볍고 위생적이며 화재에 안전하다. 볏짚 이엉 3년 치 비용으로 60년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화사한 색을 선택하여 도장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매년 새 이엉을 갈아 얹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부의 지원과 대출(1만~15,000원), 지붕개량 계(契)로 자금을 마련하고 공동작업으로 주민들 스스로 한 집 한 집 지붕을 교체해 나갔다.
반면 개량지붕 재료(시멘트, 기와슬레이트, 함석)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기와슬레이트는 가볍고 위생적이며 화재에 안전하다. 볏짚 이엉 3년 치 비용으로 60년간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화사한 색을 선택하여 도장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매년 새 이엉을 갈아 얹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정부의 지원과 대출(1만~15,000원), 지붕개량 계(契)로 자금을 마련하고 공동작업으로 주민들 스스로 한 집 한 집 지붕을 교체해 나갔다.
지붕에서 주택 개량으로 한 걸음 도약
화사하고 깔끔한 새 지붕은 보기에 시원했고 이엉 교체의 노동력을 덜어주었지만, 지붕만 바꾼다고 해서 시골집이 서울집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바지저고리에 중절모’, ‘치마저고리에 양모자’ 격이었다.
이제 주택 개량이라는 새 과제가 주어졌다. 뒷간은 화장실로, 부뚜막은 주방으로, 마루는 거실로 바꾸는 주거 근대화의 과정이었다. 상하수도와 연탄 난방이라는 생활환경 개선의 새마을사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도전이었다. 아쉽게도 정부의 지원금이 감소되고 건축비는 인상된 탓에 당시 도시형 문화주택 건설사업의 성과는 저조했으나, 1980년대까지 꾸준히 주택 개량이 추진되어 오늘날 농촌 주택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지붕 개량은 농촌 주택 현대화의 첫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