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 이야기
1970년대의 새마을운동과 관련된 동영상과 사진을 활용해
당시 시대상과 생활상, 새마을지도자 삶의 면면을 엿볼 수 있도록
가공한 스토리텔링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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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이야기
농어촌에 독서 문화를 꽃피운 새마을문고
새마을문고 성장기
마을문고로 공동체 의식을 일군 주민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지역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강조한 말이다. 그런데 이 속담의 전형을 보여준 사람들이 있다. 경기도 연천군 은현면 봉암리 주민들이 그 주인공이다.
1974년 국민학교 5학년 조계숙 학생이 글짓기 대회에서 우승한 사건이 마을 변화의 씨앗이었다. 아버지 조영순 씨는 딸과 마을 아이들을 위해 아동서적 120권을 수집하여 안방에 비치해놓고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일명 ‘안방문고’였다. 아이들이 책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하자 부모들의 자세가 바뀌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책을 사주고 싶었다. ‘신우회’라는 모임을 결성하고 모래를 채취하여 번 돈으로 책을 구입했다. 아이들도 폐품 수집으로 거들었다.
3년 뒤 봉암리 주민은 공동 양묘작업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아이들에게 마을문고를 선사했다. 봉암마을문고가 개관하던 날, 아동문학가 이원수 선생이 찾아와 축하해 주었다. 한 소녀의 글짓기가 일으킨 아름다운 나비효과였다.
봉암리 사람들에게 마을문고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첫째로 후대를 위한 바람직한 교육환경을 만들어주었고, 둘째로 각박하던 마을에 공동체의식을 형성해주었다.
주민 모두가 주인인 마을문고
봉암리에서 ‘안방문고’가 시작되던 1974년 무렵, 전국적으로 3만 5,000여 개의 마을문고가 보급되었다. 젊고 의욕적인 10명의 주민이 문고회를 결성하여 대출과 반납을 담당했다. 독서의 기회를 얻게 된 주민들은 크게 환영했지만 마을문고라는 공공 자산을 잘 유지하거나 발전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30권으로 시작한 도서를 계속 늘려가려면 마을 주민이 자체적으로 기금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세금이 아닌 마을 기금으로 운영한다는 것, 이것은 도서관과 마을문고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고작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일이라도 마을의 공공자산을 관리 운영하는 데는 주인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절대적이었다.
정부의 세금이 아닌 마을 기금으로 운영한다는 것, 이것은 도서관과 마을문고의 가장 큰 차이점이기도 하다. 고작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는 일이라도 마을의 공공자산을 관리 운영하는 데는 주인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절대적이었다.
마을문고에서 새마을문고로
마을문고는 새마을문고의 전신이다. 1961년 사회사업가 엄대섭 씨가 ‘마을문고보급회’라는 간판을 내걸고 농어촌에 마을문고를 유치하는 활동을 전개한 것이 바로 마을문고 사업이었다. 언론이 먼저 이 사업에 관심을 보였고, 사회 지도층 인사가 임원이 되어 기금을 보탰고, 정부가 적극 후원했다. 전국 곳곳에 마을문고가 보급된 후에는 효율적인 행정 관리가 불가피해졌다. 1977년 정부는 사업을 인계받아 이름을 새마을문고로 바꾸고 새마을운동의 일환으로 체계화해나갔다.
1980년 엄대섭 씨는 마을문고 보급사업의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한편 봉암리 주민들의 훈훈한 미담은 1983년 MBC 드라마로 제작되어 어린이날 특집극으로 방영되었다.
1980년 엄대섭 씨는 마을문고 보급사업의 공로를 인정받아 ‘아시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한편 봉암리 주민들의 훈훈한 미담은 1983년 MBC 드라마로 제작되어 어린이날 특집극으로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