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새마을」 잡지
1972년에 창간된 《월간 새마을》에 수록되었던
기사들 가운데 오늘날 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의미한 기사들을 재조명합니다.
기사들 가운데 오늘날 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의미한 기사들을 재조명합니다.
잡지 이야기
1970년대 농어촌 근대화를 위한 메탄가스 시설 보급사업
“초미세먼지주의보를 발령합니다.
실외 활동에 주의하시고,
외출 시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외출 시 보호 마스크를 착용하시기 바랍니다”
2013년 12월 5일, 기상청은 초미세먼지 주의보를 처음 발령했습니다. 호우주의보, 폭설주의보, 강풍주의보가 아닌 ‘먼지’ 주의보를 접한 국민들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새삼 피부로 느꼈습니다.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 개발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선진국에서는 태양열, 수력, 지열, 풍력, 해양 에너지, 바이오매스 에너지 등 신재생 에너지를 꾸준히 개발하여 더디게나마 실용화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이오연료 분야에 대한 기대가 각별합니다. 바이오연료란 살아 있는 유기체뿐 아니라 동물의 배설물 등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포함하는데, 커피콩의 껍질조차 연료로 쓰일 만큼 바이오연료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선진국에서는 태양열, 수력, 지열, 풍력, 해양 에너지, 바이오매스 에너지 등 신재생 에너지를 꾸준히 개발하여 더디게나마 실용화 단계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바이오연료 분야에 대한 기대가 각별합니다. 바이오연료란 살아 있는 유기체뿐 아니라 동물의 배설물 등에서 나오는 부산물을 포함하는데, 커피콩의 껍질조차 연료로 쓰일 만큼 바이오연료의 세계는 무한합니다.
축산농가의 메탄가스 이용안내 (1970년대 추정)
“값싸고 위생적인 메탄가스를 이용,
주부의 불편 덜고 문화생활을 하자”
대체 에너지에 대한 관심은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국내 에너지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았던 1970년 초반 가정용 메탄가스 활용이 도입되기도 했습니다. 석유 파동에 따른 연료수입비용을 절감하고 무분별한 벌목으로 황폐해진 산림을 보호하는 동시에, 농가의 연료문제를 해소할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었기 때문이지요. 이에 정부는 적합한 농가를 선정하여 2만 4,000여 기의 메탄가스시설을 보급했습니다.
축산농가의 메탄가스 이용안내 (1970년대 추정)
1972년 《월간 새마을》 6, 7월호에서는 ‘농어촌의 생활과학’이라는 제목으로 축산 분뇨를 활용한 메탄가스의 활용법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설명에 따르면 가축의 분뇨를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메탄가스의 가장 큰 장점입니다. 게다가 설치하기도 간편하고, 프로판가스나 연탄과는 달리 폭발과 가스중독의 위험도 없습니다. 주부의 취사시간을 줄여주고 수질오염의 걱정도 덜어줍니다. 남은 발효액은 작물에 좋은 청정비료로 쓸 수도 있다고 합니다. 투자 대비 이익이 꽤 높은 대체 에너지인 셈이지요.
“돼지 2마리와 닭 50마리만 있으면
5~6명 가족의 연료는 걱정 없다”
메탄가스 활용의 단점은 겨울철 온도 유지입니다. 발효탱크 내부 온도가 30도 이상 유지되어야 하는데, 겨울철에는 내부에서 탄산가스가 발생하여 활용이 불가능해지는 것이죠. 실제로 메탄가스 혜택을 본 농가는 많지 않았습니다만, 예외도 있었습니다.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의 유정촌 씨는 메탄처리장치에서 탄산가스를 분리하여 순수한 메탄가스를 추출하는 저장탱크를 개발했습니다. ‘아이디어 촌장’으로 불리던 그는 화력 좋은 메탄가스로 마을 주민들의 연료 문제를 해결했고, 탄산가스로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키워서 물고기, 닭, 돼지 사육에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김포군 고촌면 신곡리의 유정촌 씨는 메탄처리장치에서 탄산가스를 분리하여 순수한 메탄가스를 추출하는 저장탱크를 개발했습니다. ‘아이디어 촌장’으로 불리던 그는 화력 좋은 메탄가스로 마을 주민들의 연료 문제를 해결했고, 탄산가스로는 식물성 플랑크톤을 키워서 물고기, 닭, 돼지 사육에 큰 성과를 얻었습니다.
축산농가의 메탄가스 이용안내 (1970년대 추정)
메탄가스를 활용하려는 노력은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지만 안타깝게도 대중화 단계까지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화석연료를 대신할 완전한 대체 에너지를 얻으려면 긴 시간과 비용 투자가 요구되는데, 그러기엔 국내 여건이 뒷받침되지 못했던 것이죠. 하지만 당시의 시도는 대체 에너지 개발의 중요한 첫 걸음이었습니다.
에너지 대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신재생 에너지 개발의 초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