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이야기
새마을지도자들의 생생한 활약상을 통해
그들의 리더십과 당시 마을 단위별 새마을운동의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들의 리더십과 당시 마을 단위별 새마을운동의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지도자 이야기
새마을정신이 기업 정신이다
전라남도 광산군 임곡면 광곡 마을 기영호 씨 이야기
‘새거리 보릿세’를 근절하다
전라남도 광산군 임곡면 광곡 마을. 나주평야가 탁 트여 있어 예로부터 ‘너브실’이라 불려온 곳이다. 행주 기씨의 집성촌이기도 한 이 마을은 성리학자 고봉 기대승의 고향으로, 그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한 월봉서원이 들어서 있다. 그런 만큼 유교적 풍토가 짙어 1970년대 전국적인 근대화 물결에 대한 거부감이 심했다.
월봉서원(월봉서원 홈페이지)
1978년 기영호 씨는 새마을지도자 교육을 자청했다. 새마을지도자연수원에서 새마을교육을 마치고 가장 먼저 추진한 일은 마을금고 설립이었다. 주민 대부분이 소작농으로서 ‘새거리 보릿세’라고 하는 고리대금에 짓눌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주들의 저항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3년 만에 마을금고를 안정화시켜 고리대금의 악순환을 근절시켰다.
이후 20년 동안 마을의 환경개선 사업을 주도했으며, 마을청년회를 중심으로 비닐하우스 원예 사업과 비육우사업을 이끌었다. 감, 버섯, 산나물 등을 채취하여 도회지에 직접 납품하는 2차 산업에도 도전했다. 송이버섯 채취로 이윤을 남겨 자녀를 대학졸업까지 시킨 경우도 있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사업 방식이었다.
너브실 새마을 소식지 (1979년)
한편 마을 발전에 관한 모든 정보를 공유하자는 취지로 ‘너브실 새마을’ 소식지를 손수 제작하여 타지에 살고 있는 출향자들에게 배포하기 시작했다. 나날이 발전하는 고향 소식을 접한 출향자들은 격려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유교 정서가 뿌리 깊은 마을을 개혁시키다
너브실 마을이 근대화되는 과정에서 가장 큰 장벽은 행주 기씨 특유의 유교적인 정서였다. 봉건적인 사상이 몸에 밴 이들에게 새마을사업은 전통적 질서를 어지럽히는 풍조였을 뿐 아니라, 대대로 땅을 소유해온 지주들로서는 ‘자립’이나 ‘협동’이라는 구호가 영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특히 마을 안길을 넓힐 때 반발이 극심했다.
“선조가 물려주신 땅을 어떻게 내 마음대로 기부하느냐.”
“길을 내려면 내 땅을 피해서 내라.”
“주민들에게 내 땅을 공짜로 내주란 말이냐.”
기영호 씨는 문중 어르신을 찾아가 정면으로 맞섰다.
“우리 마을의 가장 큰 자산은 월봉서원 아닙니까. 타지에서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맞으려면 넓은 진입로를 만들어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고봉 기대승의 후손으로서 서원도 관리 못한다는 건 부끄러운 일입니다. 길을 내어야 마을이 발전하고, 마을이 발전해야 기씨 가문도 번성할 수 있습니다.”
반발의 여지가 없는 완벽한 설득이었다.
국내 최초로
묵은지 김치 특허를 출원한 새마을지도자
1993년 기영호 씨는 20년간 활동했던 새마을지도자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고 김치 사업에 나섰다. 배추 재배부터 김치 납품까지 포함하는 3차 산업이었다. 지인들은 하나같이 사업을 말렸다.
“농사라는 게 어디까지나 1차 산업인데 가공 판매까지 하는 3차 산업이 가당키나 하냐.”
“경영지식도 없는 촌놈이 사업을 어떻게 감당하겠느냐.”
당시만 해도 김치 제조공장은 전국에 5개밖에 없었으며, 광주에는 단 한 곳도 없었을 만큼 선진적인 분야였다. 하지만 그는 주민 5명과 함께 영농조합법인을 만들고 정부보조금 1억 2천만 원으로 ‘내고향식품’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도전은 대성공이었다. 100프로 우리 농산물로만 만든 맛깔스런 김치가 국내외 백화점으로 팔려나갔으며, 홈쇼핑을 통해 안방까지 진출했다. 1999년에는 국내 최초로 묵은지 특허를 취득했다.
기영호 씨(광주김치문화축제)
기영호 씨의 끊임없는 도전 정신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이런 물음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협동하고 근면하고 노력하는 새마을정신이 젊은 시절부터 몸에 밴 덕분입니다. 젊은 청년일 때는 개인의 주장이 강했는데, 새마을교육을 통해서 내 주장보다는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것을 배웠죠.”
협동하고 근면하고 노력하는 새마을정신이 젊은 시절부터 몸에 밴 덕분입니다.
*위 내용은 『2016 새마을지도자 구술채록』 (책자)을 원문자료로 하여 가공한 콘텐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