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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양곡은행원장 송라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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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분류
문서류 > 일반문서
주제분류
사업 > 국내활동
시대분류
1970년대 > 1976년
출처분류
마을 > 경기도
해제문
[정의]
1976년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송라리의 양곡은행 대부미 원장철
[주요내용]
주요내용] 이 자료는 1976년 송라리 양곡은행의 대부미 원장을 모아놓은 것이다. 쌀을 빌린 사람의 주소와 성명 보증인 성명을 기입하고 대부 상환 담보 등으로 구분된 칸에 내용을 적게 되어 있다. 대부분 쌀 1~2가마를 빌린 경우가 많았고 대부 기간은 1년 미만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자는 1가마 당 2말로 연리 20%에 해당했다.
[용어정리]
[의의]
이 자료는 1976년 송라리 양곡은행의 대출 상황을 보여준다.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이었음에도 일일이 대부 상황을 개인별로 정리했다. 또한 보증인도 있어 공식적인 대출관계 형식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농촌마을의 고리채는 통상적으로 50% 이상의 이자율이었음에도 양곡은행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0%의 이자만을 받았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고리채 대신에 저렴한 이자율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기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76년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송라리의 양곡은행 대부미 원장철
[주요내용]
주요내용] 이 자료는 1976년 송라리 양곡은행의 대부미 원장을 모아놓은 것이다. 쌀을 빌린 사람의 주소와 성명 보증인 성명을 기입하고 대부 상환 담보 등으로 구분된 칸에 내용을 적게 되어 있다. 대부분 쌀 1~2가마를 빌린 경우가 많았고 대부 기간은 1년 미만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이자는 1가마 당 2말로 연리 20%에 해당했다.
[용어정리]
[의의]
이 자료는 1976년 송라리 양곡은행의 대출 상황을 보여준다.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이었음에도 일일이 대부 상황을 개인별로 정리했다. 또한 보증인도 있어 공식적인 대출관계 형식을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농촌마을의 고리채는 통상적으로 50% 이상의 이자율이었음에도 양곡은행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20%의 이자만을 받았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고리채 대신에 저렴한 이자율로 대출을 받을 수 있었기에 상당히 유리한 조건이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