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물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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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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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차용금증서 송라리
해제일
20181212
해제작성자
황병주
해제문
[정의]
1974년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송라리의 차용금 증서
[주요내용]
이 자료는 1974년 송라리 주민들의 차용금 증서를 모아놓은 것이다. 돈을 빌려준 곳은 마을금고였고 금액과 함께 모두 5개 항목으로 구성된 계약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채무자와 함께 연대 보증인 1~2명이 기재되어 있다. 차용금 금액은 5 000원부터 100 000원 사이였으며 이자는 월 2부 5리였다. 현금 뿐만 아니라 쌀을 빌리기도 했다. 쌀을 빌리는 경우에는 1~3가마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용어정리]
[의의]
이 자료는 송라리 주민과 마을금고 사이의 금융관계를 보여준다. 마을금고에서 소액의 자금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현금과 함께 쌀이 차용대상이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1970년대까지 현물경제가 농촌마을에서 상당한 비중이었음을 알려준다. 또한 연대 보증인은 대부분 같은 마을 주민들이었고 마을 전체가 공동 채무관계로 연결되어짐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농촌마을의 공동체적 금융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이다
원문 기록물 보기
1974년 경기도 이천군 대월면 송라리의 차용금 증서
[주요내용]
이 자료는 1974년 송라리 주민들의 차용금 증서를 모아놓은 것이다. 돈을 빌려준 곳은 마을금고였고 금액과 함께 모두 5개 항목으로 구성된 계약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채무자와 함께 연대 보증인 1~2명이 기재되어 있다. 차용금 금액은 5 000원부터 100 000원 사이였으며 이자는 월 2부 5리였다. 현금 뿐만 아니라 쌀을 빌리기도 했다. 쌀을 빌리는 경우에는 1~3가마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용어정리]
[의의]
이 자료는 송라리 주민과 마을금고 사이의 금융관계를 보여준다. 마을금고에서 소액의 자금을 빌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현금과 함께 쌀이 차용대상이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1970년대까지 현물경제가 농촌마을에서 상당한 비중이었음을 알려준다. 또한 연대 보증인은 대부분 같은 마을 주민들이었고 마을 전체가 공동 채무관계로 연결되어짐을 알 수 있다. 1970년대 농촌마을의 공동체적 금융관계를 보여주는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