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마을운동아카이브 : 좀도리 저축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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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 이야기

지도자 이야기

새마을지도자들의 생생한 활약상을 통해
그들의 리더십과 당시 마을 단위별 새마을운동의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지도자 이야기

좀도리 저축의 힘

전라북도 김제군 화산면 의곡마을 이종순 씨 이야기

10년 동안 빚을 갚지 못한 마을

“한 푼도 없다니까! 주고 싶어도 줄 수가 없어.”

“빚을 갚아야 하잖아요. 1원이라도 내시라니까요.”

“내가 빚졌나? 돈 갖고 튄 놈을 잡아야지!”

“정 그렇다면 이거라도 가져갑니다.”

동네 어르신과 실랑이를 벌이던 이종순 씨 일행은 끝내 마루 밑에 모아둔 빈병 몇 개를 챙겨 집을 나섰다. 또 다른 회원의 집을 찾아갔으나 역시 돈 대신 달걀과 가마니를 가져와야 했다.

새마을지도자 이종순 씨가 빚쟁이처럼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돈이며 물건을 갈취하다시피 하는 데는 사연이 있었다. 마을 이장이자 농업협동조합장이 주민들의 도장을 도용하여 쌀 2백 가마니가 넘는 돈을 챙겨 도주했기 때문이었다. 근근이 농사짓고 살아가던 주민들은 구경도 못해본 돈을 빚지게 되자 삶의 의욕을 잃었다. 뜨거운 물에 데면 찬물에도 놀란다고 했던가. 빚을 청산하기 위한 도전은커녕 술과 노름에 빠져들었다.

빚쟁이 일수 찍듯 출자금을 거두다

1976년 새마을지도자연수원에서 교육을 받던 이종순 씨는 마을금고 운영의 성공사례를 듣다가 무릎을 쳤다.
‘마을금고가 10년 묵은 마을 빚을 청산할 길이다.’
우선 뜻이 맞는 주민 네 명과 함께 마을금고 설립에 착수했다. 주민들에게 마을금고의 장점을 설명하고 출자회원을 유도하여 간신히 19명의 회원을 모았고, 출자금 5,700원으로 마을금고를 창립했다.

첫 걸음을 떼자마자 고비가 닥쳤다. 창립 당시 매일 1원이라도 출자하겠다고 약속했던 회원들의 열의가 금세 식어버린 것이다. 도통 출자금이 걷히지 않자 마을금고 회계 담당자가 회원들의 집을 찾아다니면서 돈을 받아내곤 했다. 돈이 없으면 달걀, 가마니, 마루 밑에 모아둔 빈병이라도 챙겨들고 나왔다. 그리고 그것들을 내다팔아 꼬박꼬박 계좌에 입금해주었다. 문턱이 닳도록 찾아오는 회계 담당자의 성화에 못 이겨 20일치 금액을 준비해놓고 기다리는 이들도 있었다.

순회출자 (1978년)

빚쟁이 일수 찍듯 출자금을 강제한 결과는 뜻밖이었다. 회원들이 푼돈 출자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하더니 4개월 만에 회원 수 54명에 출자금이 716,000원으로 늘어났다. 푼돈 출자를 계기로 주민들의 의욕도 살아났다. 의욕이 살아나자 성실하고 검소해졌다. 공동체 의식이 형성되어 삭막하던 마을 분위기도 푸근해졌다.

좀도리 저축의 위력

주민들의 푼돈 모으기는 ‘좀도리’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좀도리란 밥을 지을 때마다 쌀을 한 움큼씩 덜어 조그마한 단지나 항아리에 모으는 절미 행위를 말한다. 늘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에는 의지가 웬만큼 강하지 않아서는 실천하기 힘든 것이 바로 좀도리였다. 이렇게 모인 좀도리 쌀은 공양이나 제사를 위해 바쳐지거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이기도 했다.

절미(좀도리) 출자 (1978년)

힘든 형편에도 따뜻한 나눔의 전통을 살려 저축에 응용한 것이 바로 ‘좀도리 출자’였다. 한 끼마다 한 수저씩 쌀을 덜어내는 방식인데, 5인 가족이 한 달 동안 한 수저씩을 덜어내면 1일분 출자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차비절약 출자 (1978년)

이밖에도 걷기 운동으로 차비를 아껴 출자금 모으기, 공동 작업한 품삯을 출자금으로 내기, 애경사의 부조금 30퍼센트를 출자금으로 하기, 구판장의 운영 이익을 출자금으로 바꾸기 등 그야말로 출자의 생활화를 실천했다. 하물며 풍년에는 흉년 당한 셈치고, 흉년에는 풍년 맞은 셈치고 소득의 일부를 출자금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그 결과 3년 뒤인 1973년 10월, 마을금고 회원 수 83명에 자산 6,083,500원을 기록했다.

의곡마을 마을금고의 성장 비결은 ‘푼돈’에 있었다. 좀도리 출자라도 꾸준히 실천하면 목돈으로 돌려받는 신선한 감동, 그것이 바로 푼돈 모으기의 위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