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자 이야기
새마을지도자들의 생생한 활약상을 통해
그들의 리더십과 당시 마을 단위별 새마을운동의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들의 리더십과 당시 마을 단위별 새마을운동의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지도자 이야기
마을의 구세주 새마을금고
서울특별시시 영등포구 오류1동 새마을지도자 강장석 씨 이야기
금융 위기 때 방파제가 되어준 새마을금고
서울시 영등포구에 위치한 오류동 새마을금고 본점.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해 보이지만 이 새마을금고는 1975년부터 오류동의 발전을 견인해온 터줏대감이다. 그 세월만큼이나 업적도 적지 않다. 일례로 마을에 세운 경로회관이 있으며 이밖에도 굵직한 사업과 복지 사업을 지원해온 공로가 크다.
여느 동네와 다를 바 없이 평범해 보이지만 이 새마을금고는 1975년부터 오류동의 발전을 견인해온 터줏대감이다. 그 세월만큼이나 업적도 적지 않다. 일례로 마을에 세운 경로회관이 있으며 이밖에도 굵직한 사업과 복지 사업을 지원해온 공로가 크다.
오류동 새마을금고
금융 위기가 닥쳤던 1990년대 말, 오류동 새마을금고는 주민들에게 방파제가 되어주었다. 전국의 은행이 금융 혜택을 중단했던 당시 상황에서도 오류동 새마을금고만은 신용사업을 활발하게 펼쳐 긴급한 자금을 대출해주었던 것이다. 그 덕에 주민들로부터 마을금고가 시중 은행보다 낫다는 신임을 얻었다.
강장석 씨
오류동 새마을금고가 신임을 얻게 된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설립자이자 초대 이사장인 강장석 씨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새마을금고는 모든 회원이 평등합니다. 1구좌가 천원인데, 천원 출자한 사람이나 10억 출자한 사람이나 똑같이 한 표의 권리만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은행은 주식을 많이 가질수록 의결 수도 많아지죠. 그런 면에서 새마을금고가 가장 민주적이고 평등한 조직이라 생각합니다. 회원이 1만 4천 명인데, 대의원을 선출해서 모든 사안을 의결해갑니다.”
‘전국 제1의 새마을금고’라는 위업을 달성하다
오류동은 1963년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로 편입된 변두리 지역으로, 영세한 상인이나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하고 있었다. 새마을지도자 강장석 씨는 3대에 걸친 오류동 토박이로서 애향심이 각별했다. ‘가난한 고향을 잘살게 만들고 싶다’라는 간절함이 새마을금고를 설립하게끔 만들었다. 1975년 11월, 세 평짜리 사무실에서 시작해 이듬해 4월에는 금고 자산이 1억 원을 돌파했다. 그러자 주민들 사이에서 유언비어가 난무했다.
“마을금고는 주민들의 돈을 가져다가 사채놀이를 하는 곳이다!” “이사장이 개인 사업에 돈을 쓰고 있다!”
강장석 씨의 가족들은 비난이 계속되자 보수도 한 푼 없이 일하면서 욕까지 먹어야 하느냐며 그를 말렸다. 그러나 그는 주민들과 맞서지 않았다. 대신 영업시간이 끝나고 들어온 현금을 지키기 위해 5명의 회계원과 차례로 돌아가며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곤 했다.
마을 금고를 거점으로 성공한 도시 새마을의 표본(새마을 화보, 1979년)
그 결과 1977년 말에는 금고 자산이 12억으로 급증했고 바로 다음 해에는 세 배까지 불어났다. 회원 수 94명에 천만 원으로 시작해, 3년 만에 회원 수 31,700명 32억 5천만 원이라는 이례적인 성과를 일구어냈다. 10억 원 조성이 마을금고의 한계라던 예상을 몇 배나 초과한 금액이었다.
주민의 힘으로 세운 최신 복지시설
새마을금고에 출자한 회원들은 실질적인 혜택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신용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영세 상인들은 고리채의 굴레에서 벗어났고, 투자가 절박한 지역의 중소기업들은 경영 기반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
애초 오류동 새마을금고는 주민 복지를 위해 시작된 신용사업이었다. 따라서 매년 이익금을 셋으로 분할하여 30%는 적립하고, 30%는 배당하고, 나머지는 마을 복지사업에 사용했다. 연 24%라는 높은 배당을 하고도 이익금이 남아돌자 1978년 제법 규모 있는 경로회관을 건립하였다. 단순한 마을 경로회관이 아니라 도서관과 회의실까지 갖춘 복지시설로, 당시에는 가장 선진적인 시설이었다.
새마을금고의 지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마을 복지사업에 우선순위를 둔다는 취지에 따라 마을 청소를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최신형 청소차를 구입했고, 교통 사각지대에 있는 주민을 위해 버스를 구입하여 자체적으로 운행했다.
1979년 대통령은 이러한 발전 사례를 인정하여 오류동에 단체표창을 수여했고, 주민들은 하사금 7천만 원을 마을의 공동구판장 설립에 투자했다.
이후 전국에서 찾아온 새마을지도자, 공무원, 기업인들이 오류동의 도시 새마을을 배우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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