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원고
이 인터뷰는 대한민국의 무형자산인 새마을운동을 역사적 기록으로 길이 남기고자 새마을운동 추진 당시 각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증정으로 받은 자료입니다.
문. 처음에 새마을운동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답. 처음에 새마을운동 시작한 연유는 잘 아시잖아요. 1970년 4월 22일에 새마을 가꾸기 사업을 선포하셨는데 그때 아시다시피 그해 가뭄이 심하니까. 전부 한탄만 하고 잇는데 청도군 마을에 가보니까 마을 사람들이 개천을 파서 물길을 찾아가지고 그 가뭄을 극복한 사례. 그래서 그 가는 물줄기를 찾아서 양수로 해가지고 호박, 가지, 오이 이런 거 심는 거 보고, 이러한 마음으로 하면 농촌 가난을 면할 수 있다. 새마을 가꾸기 사업이라고 해도 좋으니까 우리 농촌을 한번 부흥해보자. 이것이 70년 4월 22일입니다. 그때 나는 농협에 있었습니다. 새마을 연수원에 수원농민회관에 있었어요. 초대원장이 김준원장이야. 그래서 농협 과장급들 연수가 있었어요. 기업인 반도 있었고, 기업체 간부 반도 있는데 농협간부들하고 교육을 시켜야 되겠다. 중앙회 자금부, 농협 중앙회자금부 금융기획과장을 했던 때여. 내가. 그때 아주 전 농협금융개혁을 다 세우는 자리였는데 각 반을 편성해 가지고 수원농민회관에서 연수를 하는데 내가 분임반 종합 발표를 했는데 우수반으로 뽑혔어. 그것이 계기가 돼서 금융기획과장 정교관을 새마을연수원 교관으로 와라. 차출이 됐어요. 그땐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기 때문에 농협에서 차출하면 다 교관으로 근무하게 돼있어요. 로테이션 시스템입니다. 처음에 시작도 경기도 고양에 있는 농협대학에 있는 독농가연수원. 그 독농가연수원 초대 원장이 김준 박사님이셔. 인터뷰 때 들었죠. 그러다 수원 농민회관으로 이사 간 거에요. 그래서 그 말씀 드린 대로 금융기획 과장할 때 우수반으로 분임토의를 잘했다고 해서인지 그게 원인이 되가지고 교관, 부원장, 원장까지 했죠.
문. 그때가 몇 년도 인가요?
답. 그때가 74년도입니다. 그렇게 된 동기는 서울상대 경제학과에서 공부했습니다만 농업경제학을 주로 공부 많이 하고 방학 때면 농촌 부흥운동도 하고 4H 구락부 활동도 하고 또 농업기술자 협회를 내가 대학 다닐 때 가입한 사람이여. 형님은 농업요원으로 지금 그때 당시만 해도 50년대 해방직후에 새마을지도자나 마찬가지에요. 농촌 진흥청에서 지도도 받고 와서 농촌 지도도 하고 우리 친 사형께서. 우리 선친께서는 복숭아 묘목을 우리 동네에 맨 처음 갖다가 보급하신 분이란 말이여. 나는 4H구락부 운동에 참여해가지고 우리 동네 청년들하고 같이 산에 나무도 심고 또 황무지를 개척해가지고 산성토양을 석회를 뿌리면 산성 토양이 알카리성 토양으로 바뀝니다. 콩을 심으면 굉장히 잘 되요. 또 닭, 돼지 같은 걸 길러가지고 4H 경진대회에서 우리 마을에 남녀 1등을 3년간 연속 최우수상을 받았어요.
질문. 어디 마을인가요?
답. 전북 완주군 이선면 청복마을입니다. 그래서 청복 사회지 부락부 아주 유명했어요. 푸를 청자 복북자. 네입짜리 클로버하고 푸를청, 복복은 인연인 있다고 해가지고 많은 사람들이 견학도 하고 이런데서 자라났기 때문에 나는 금융기획 과장하다가 새마을연수원 교관으로 파견발령 받은 걸 영광으로 생각하고 가서 열심히 근무했죠. 이상 농촌 건설이 내 꿈이었으니까. 거기서부터 새마을운하고 인연이 된 겁니다.
문. 74년도 한창 새마을운동이 불붙을 시작할 때인데 교육 분위기 어떤가요?
답. 그때의 교육 분위기는 호가 해경인데 그것이 김준원장님 직접 쓰신 겁니다. 농심을 생활화하자. 그렇게 해가지고 저 어른이 직접 원장도 청소부다. 청소요원도 원장이다. 전 교육인원이 혼연일체로 정성을 더하자. 그러니까 그 분위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잖아요. 김준원장님 인터뷰했다니까. 말씀을 잘 들으셨겠습니다만 그래서 전 시설을 교육환경화, 전 환경을 교육교재화, 전요원을 갖다가 교육요원화. 이런 방침 하에 열심히 띄었죠. 원장, 부원장도 같이 체조하고 구보하고, 그런 사진이 지금 저기 있잖아요.
문. 원장님이 치매결려서 잘못 들었어요. 그 당시 공무원도 오고 장관급도 오고
답. 그때 그랬을 때 이따 저걸 좀 찍으시겠지만 저길 보면 우리의 생활 신조하는 게 시계 밑에 있습니다. 저기 있다가 찍으세요. 이상은 높게 현실은 착실하게 살자. 빚지기를 두렵게 저축을 기쁘게 알자. 겉치레보다 실속 있는 생활을 하자. 그런 구호를 매일 아침 외치면서 장관하고 기업체 총수 가량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라든가, 이건희 회장이라든가, 거의 다 다녀갔죠. 장관급은 문화공고부장관을 하던 이진희 문화공고부장관이라든가, 여자도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판검사들 다 왔잖아요. 그때 당시 저보고 너는 대단하다. 장관들, 판검사들 막 데려다가 교육시킨다며 이런 말을 들었는데 그건 틀린 말입니다. 장관들, 판검사들,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를 데려다가 교육시킨 게 아니고 처음에는 새마을 남자지도자만 3주간 교육을 했어요. 독농가연수원에서 근데 이분들이 돌아가 가지고 우리들만 교육하면 안 되겠다. 부녀 지도자하고 같이 교육을 하자. 그래서 부녀 지도자 반이 생겼습니다. 같이하다보니까 수료소감을 썼는데 박정희 대통령에 와서 보시고 우리만 교육 시켜야 소용없다. 일선 농협조합장이나 군수들을 교육시켜야 우리가 가서 일 할 때 도와준다. 그래가지고 농협조합장하고 군수들이 합석을 했습니다. 와서 교육 내용을 보고 이게 아니구나, 감탄을 했어요. 뭘 보고 감탄 했냐. 하사용 지도자라고 있습니다. 그 분이 조비천에 충주 거기 게신데. 이분은 머슴살이부터 해가지고 부부 간에 채소 농사부터 시작을 해가지고 전부 소득을 올린 사람이에요. 그런 눈물겨운 사례 또 정문자 지도자 같은 여자 지도자 사례. 정문자 지도자하고 인터뷰 하셨지만 마을에서 남편들은 술만 먹는데 여자들이 좀도리 저축은동 또는 가족 계획운동을 해가지고 마을 군 반장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 기금을 조성을 해가지고 술 먹고 놀음만하는 남편들, 남정네들 갖다가 깨우친 거 아닙니까. 그런 얘기 들었습니까? 그런 분들을 성공 사례담으로 교육이 다른 거 아니예요. 실제 그 역경을 딛고 나도 가난을 딛고 새마을 건설에서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자. 이렇게 해서 솔선수범한 눈물겨운 성공 사례담에 아주 굉장히 감동을 받은 겁니다. 그래서 군수나 농협조합장들이 이분을 도와주고 우리도 새마을운동에 참여해야 되겠다. 그래가지고 군수 이런 분들이 훈련화를 신고 일선 새마을현장에서 농민들하고 동고동락하면서 같이 참여 했던 것입니다. 근데 이분들 수료 소감에 우리만 해선 안 되겠다. 도지사하고 장관이 같이 참여해서 우리가 건위하는 것을 반영하게 해달라. 해가지고 도지사들하고 장관이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때에 도지사랑 장관들이 참여해가지고 성공사례를 듣고 새마을 지도자들하고 같이 동고동락하면서 한 솥에 밥을 먹으면서 같은 옷을 입으면서 같이 뛰고 토의하고 그 사람들이 마을 개발을 일정을 플랜을 토의하고 마을 개발을 가지고 돌아가서 마을을 개발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장관들이 뭘 도우면 좋겠느냐, 우리 도지사들이 뭘 도우면 좋겠느냐? 해서 왔지 우리 연수원한테 교육을 받으러 온 것은 아닙니다.
문. 성공사례라는 것이 효과가 대단했겠어요.
답. 그러니까 석세스 스토리라고 하는데 그 성공 사례와 분임토의 이게 핵심입니다. 성공사례담은 피눈물 나는 역경을 딛고 일어난 성공 사례담을 듣고 현장 견학을 합니다. 현장에서 보고 나도 이렇게 하면 되겠다. 하는 자신감을 가지고 행동계획서, 마을 개발계획서를 작성해 가지고 마을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래가지고 군수들과 도지사들에게 지원 받을 건 지원받고 이렇게 해서 마을을 개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피 교육기관에 일선에 돌아다니면서 원장, 부원장 할 것 없이. 그때 박진환 박사님하고 김준원장님도 마을 전부 돌아다녔어요. 우리는 물론 마을에 현장에서 가서 같이 잠자고 오지부락에 제가 가다가 간첩신고를 당한 일도 있습니다. 제가 수상한 사람이라고 녹음기를 가지고 라디오를 가지고 다니니까. 틀림없이 저거 간첩이다 해가지고 조사를 받은 것이 있어요. 나는 간첩이 아니고 새마을 지도자 연수원 지도부장인데 오지마을에 새마을 지도자 초청을 받아 가지고 마을교육을 하러 장수 전라도 진한장수 그 산간 오지를 찾아가는 중이다. 해가지고 신원 조회하고 제가 방면된 적도 있습니다.
문. 다 찾아가기도 했군요,
답. 그러면 농심이라는 게 뭐냐 첫째는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일하자는 겁니다. 지금은 중국에도 인제 과학적 발전관이라는 이야기가 중국 신 농촌 건설에 후진타오가 선언한 건데 농사도 과학적으로 지어야 된다는 이 말이죠. 콩을 심으면 콩이 나고 팥을 심으면 팥이 나오는 게 단순한 것 같지만 과학적인 논리입니다. 이와 같이 과학적인 사고방식으로 사고방식을 고치자. 구태의연한 구습을 타파하자는 것이지요. 과학적인 사고방식이 첫째고 둘째는 성실한 실천. 새마을운동은 말로 이론으로 하는 게 아니다. 여기서 성공 사례담을 듣고 현장에도 가봤지 않느냐. 우리가 그와 같이 실천하자. 성실한 실천성 이것이 농심의 둘째덕목입니다. 셋째는 인과응보의 진리입니다. 땀 흘린 대로 곡식을 수학한다. 우리 땀은 정직하다. 그런 인과율을 믿는 마음. 이것이 농심의 세 번째 덕목입니다. 그 다음에 강인한 인내력입니다. 강인한 인내력, 끈질긴 체력. 이것이 네 번째 덕목입니다. 다섯 번째는 정직한 순박성입니다. 참 농부는 거짓말을 할 줄 몰라요. 여기 지금 정태화 대부님이라든가, 김아덕 씨 우리 노인회 총무님이다만 이분들 농촌에서 계속 살아왔어요. 또 박병진이라는 분이 우리일도 많이 도와줬는데 이분은 아주 어렵게 살았지만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았기 때문에 지금은 많은 토지를 가지고 지금 잘삽니다. 아주. 그 다음에 겸허한 자세입니다. 벼이삭이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까? 오히려 쭉정이 벼는 이렇게 고개를 숙이지 않고, 뻣뻣하게 있으면 그거는 쭉정이지 익은 벼이삭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는 벼이삭처럼 겸허한 자세로 그러니까 이것이 경전도 잇습니다만 식영에 또는 서경에도 나오는 말입니다만 견수이교 만초선이라 겸손하면 이익을 얻고 교만하면 손실을 초래한다. 그래 우리가 겸허하자. 그것이 우리가 항상 겸손하자는 것이 여섯 번째 덕목입니다. 일곱 번째는 창조적 발상입니다. 뭔가 새롭게 남이 생각 못하는 것을 창조적으로 우리가 그런 발성을 가지고 있잖아요. 이것이 농심의 일곱까지 덕목인데 피디님도 아마 아십니다만 새마을 다큐 영상물을 제작하려면 새벽에 구상을 하시죠.
문. 꼭 새벽은 아닌데 새벽에 집중이 잘 되죠.
답. 새마을 연수원장 때 강조한 것 중 하나가 새벽에 탁 일어나면 맑은 정신에서 골똘히 생각을 해라. 오늘은 무엇을 바꿔볼 것인가. 내가 이렇게 살 것이 아니라. 내가 술만 먹고 담배만 폈으면 오늘부터 결단성 있게 바꿔보자 생활 습관을. 농사법을 바꿔보자. 누가 보니까 새로운 농사법을 했던 데 나도 한번 바꿔보자. 두 번째로 이용해보자. 나도 뭘 이용해보자. 어떤 원리를 이용해보자. 어떤 방법을 이용해보자. 세 번째는 응용해보자. 나도 어떤 것을 응용해보고 어떤 원리를 응용해보자. 바꿔보자. 이용해보자. 응용해보자. 이런 세 가지 생각을 하고 새벽에 굳건하게 하루 일을 출발하면 일이 새로워집니다. 이렇게 해서 새마을 가꾸기 사업도 이렇게 시작한 거에요. 사실은 그런 창조적인 발성이 농심의 일곱 번째 농심의 덕목입니다. 그 다음에 여덟 번 째 덕목은 근면, 근면, 부지런한 것은 백행지근본이라. 부지런하면 큰 부자는 못 되도 반드시 작은 부자는 된다고 했어요. 대복은 재천이요 소복은 재어근이라. 그런 말 많이 들으셨잖아요. 지금 젊은 분들은 한문 모르니까 문제입니다만 큰 부자는 여러 가지 큰 발상도 해야되고 운도 따라야 하지만 그냥 부지런히 노력하면 작은 부자는 된다는 말이죠. 대복은 제천이요. 소복은 제어근이라. 그런 근면성 이게 여덟 번째 덕목이고 그다음에 자조정신. 셀프 헬프라는 거, 셀프 컨트롤. 또 한분으로 자조자 천조 중국말로 찌주자 첸조. 스스로 돕는 자는 하늘이 돕는다 이 말이죠. 그러니까 자기를 돕는 사람은 하늘도 도와준다. heaven helps who halp themselves.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내가 아프리카 사람들한테 할때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heaven helps who halp themselves. 그 다음에 두 번째로 강조한 것은 diligence and cooperation. 부지런히 서로 협동하라. 그리고 정직하라 어니스트 이즈 더 베스트 폴리시. 이건 잘 아시지만 희극작가 버나드 쇼가 한말 아닙니까. 정직만이 최선의 정책이다. 내가 그 사람들에게 농심의 덕목을 누누이 강조했어요. 탄자니아 콩고에선 지도자들이 자기나라 와서 두 시간 강의한 모든 내용 처음에 생명운동이다. 새마을운동은. 부단히 지속 발전하는 것이다. 환경개선에서 소득증대로, 소득증대에서 공장의 생산성 증대로, 그 다음에 도시와 국가발전 그 다음에 세계발전으로 이런 운동으로 우리가 해나가자. 하는 강조하니까. 자기에 나라에서 그 얘기를 해달라고 초청을 했어요.
문. 언제 가셨어요?
답. 인제 가려고해요. 아홉 번째가 자조. 셀프 헬프. 자조 정신은 셀프 컨트롤. 극히 자제 정신도 포함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코퍼레이션. 협동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피디님이 그랬지만 영상기사님이 같이 오시지 않으면 못하자나요. 우선 단순한 다큐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고. 가정도 남자 여자 가정이 있어야 되고 마을도 마을 사람들이 협동해야 되고 지금은 국제간의 코퍼레이션입니다. 지금 21세기의 새마을운동은 국제간의 협력. 저개발 국가를 발전시켜야 되고 지식정보를 우리가 최대한으로 빨리 우리가 개인적인 정신자산으로 삼아가지고 보급을 하고 거기서 배울 점을 우리가 배우고 이렇게 해서 합동해가지고 그야말로 인터네셔널 코퍼레이션. 이게 코퍼레이티브 스피릿 그야말로 협동하는 정신이 21세기 글로벌 리더십이 아닐가. 어떻게 보십니까.
문. 보니까, 오래 전부터 외국 사람들이 와서 새마을이 배워가고 그랬더라구요.
답. 그렇죠. 그러니까 이와 같은 열 가지 기본 농심. 이 정신을 바탕으로 해가지고 우리가 일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 이거예요 1996년도에 인민대회당에서 한중과학기술 협력연토대회라는 게 있었어요, 여기 책에 나와요, 그거는.
문. 아 저 받았습니다.
답. 여기 앞에 설명이 나오는데 한중 과학기술 협력연토대회 거기를 갔더니 인민당에서 수천 명이 꽉 차가지고 한국에 그 전근모 당시 과학기술처 장관. 기아그룹 김선호 회장 등등 또 정치인으로서는 홍재인도 있었고, 여러분이 같이 가가지고 그때 국교 수교한지가 얼마 안되잖아요. 92년도에 수교했으니까. 뭐를 협력할 것이냐 해서 기업체들은 중국에 공장을 하기로 한 20건인가 성사가 됐어요. 기업체 분들이 그래서 기술협력도 하고. 그런데 한분이 과학협회 유수규란 분이 여기도 소개 됐지만. 그것보담도 농촌개발을 해서 새마을운동을 우리나라에 도입시켜주시오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인민대회당에서 관선희 박사가 기조연설을 하면서 여러분이 새마을운동에 대해서 관심이 많은데 당초 교육을 담당한 전교관 새마을중앙연수원장이 여기 참석을 했다. 잠깐 일어나시오. 해서 일어나니까 박수를 굉장한 박수를 받았어요. 그 사람들은 열열 환영합니다. 그래서 유태영 박사하고 같이 갔었는데 유태영 박사는 덴마크나 이스라엘에서 선진농업개발 그것을 영상으로 만들어가지고 박정희 대통령한테 브리핑을 한일이 있고 참여한 일이 있죠. 초기 기획에. 그분도 같이 초창기부터 한국 새마을에 대해서 소개를 해주겠다. 협약을 했어요. 그 뒤로 아무 소식이 없어요. 5년이 지난 2000년도에 들어와서 비로서 자기들 과부원이라고 연수원을 지었으니까 교육을 시작하겠습니다. 연락이 왔어요. 근데 그 사람들은 맛만 냅니다. 자기들 연수원부터 짓고 전부 준비를 해가지고 그래서 중국과학기술협회하고 한국에 있는 동남아 과학기술협약재단 곽선일 박사가 이사장인데 거기하고 협력을 맺었어요. 5년간 한국 개발 농촌 추진 과정을 소개해 달라. 그런데 5년이 지나가지고 5년을 연장을 했죠. 그 뒤에 중국에서 정식으로 정 섬으로 돌아다니면서 교육을 하고 하니까. 우리도 이와 같이 해야겠다. 후진타오 주석에게 보고가 돼가지고 신 농촌 건설이라는 프로젝트가 대대적으로 84년부터 중국 정책으로 그게 1호 사업입니다. 그게 왜 그러냐면 8000만 정도는 굉장히 부자입니다. 듣는 말로는 보통 한국 돈으로 1000억씩 가지고 있답니다. 중국에 8000만 명이. 그리고 4억은 우리나라 중산층 이상이에요. 잘살아요. 나머지 6억이 문제에요. 4억하고 인민해방군하고 공장 노동자들은 월급은 적지만 살아가는 문제는 없는데 약 6억으로 추산되는 빈곤농촌지역 사람들은 가난하거든요. 그러니까 서구 대개발 개획을 세우고 동시에 신 농촌 건설 사업을 우리가 추진하자. 그래가지고 가난하게 자라나는 6억 정도의 농민들을 우리가 잘살게 하자 이런 프로젝트가 척척 진행이 되는 겁니다.
문. 주석이 얘기한 신 농촌은 때가 언젠가요.
답. 그게 2004년에 정식 국가사업을 채택이 됐지 않습니까.
문. 인민대회당에서 얘기 한건가요.
답. 그때는 96년도 과학기술 교류연토대회니까. 공장도 자기들이 유치하고 그때 만해도 대만에 있는 부자들이 중국에 본토에 투자했지 다른 사람은 투자 안할 때입니다. 한국 기업들이 청도(중국)지역을 중심으로 투자를 많이 했죠.
문. 새마을운동이 하는데 교육이 중요한 이유가 어디에 있나요.
답. 교육이 왜 중요하냐면 인간을 개조시킨다하는데 그것도 잘못된 겁니다. 부모가 아들도 잘 못 가르칩니다. 근데 다 큰 사람들을 누가 개조를 시키겠습니까. 다만 어려운 여건을 무릅쓰고 가난한 농촌에서 자라는 새마을지도자들이 무엇인가 낫아 보겠다는 그러한 모습을 보고 아하! 이와 같은 모습을 전 국민, 전 건설 노동자, 또는 지식인들에게 우리가 보급시켜야 되겠다. 이런 뜻으로 박정희 때부터 기획이 된 것입니다만 이런 걸 소개 시키자. 새마을 지도자 연수원 개원을 시켜보니까. 급격하게 정신이 확산이 됐어요. 그래서 무엇이 새마을 정신인가. 아까 말씀드린 농심의 10가지 덕목, 이거는 중심으로 한, 이거는 자연의 이법이요. 이거는 지혜의 순리이자, 천심이다. 천심은 곳 애심이고, 사랑애자 애심은 곧 민심이다. 이걸 강조해가지고 우리라 농민도 저렇게 스스로 잘 살려고 새마을을 건설해서 하는데 우리 공장이나 건설 현장이나 이런 거 못할 것 없다. 그래가지고 건설 현장에서 횃불을 들고 야간 건설 수주를 기한 내에 완료를 했기 때문에 중동 건설현장에서도 굉장히 그때 그 신뢰를 얻었죠. 그런 것이 뭐냐, 교육을 통해서 새마을정신이 보급된 것이 국가의 성장 동력으로 성장 동력화 돼가지고 국력의 근간이 된 것이죠. 그건 잘 아시잖아요, 지금 까지도 그런 정신이 근간이 되가지고 지금 잘 모르셔서 그렇지. 세계를 돌아다녀 보면요. 중국에 온남성에 꽃잡이로 유명하지 않습니까. 산동성에는 채로 재배로 유명하잖아요. 산동성에 큰 김치 공장, 온남성에 큰 꽃잡이 해놓은 거 한국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어디든지 뻗어 나가서 한번 하면 된다 하는 정신이 보편화됐어요. 한국 국민한테는. 마지막으로 당부할 것은 새마을운동은 생명운동이기 때문에 계속 생산 발전해야 되고, 새마을 연수원에서는 글로벌 리더를 많이 양성을 해야 합니다, 지금. 그리고 기초 질서라는 것도 이려서부터 일본은 아이들을 코를 닦아서 아기가 스스로 휴지통에 넣도록 습관화 시키지 않습니까. 그리고 친절한 매너라든가. 정직성 이라든가. 이런 걸 가지고 선진 국민들의 의식을 갖다가 함양시킬 수 있는 기초적인 질서, 선진 국민의식을 어려서부터 몸에 베도록, 또 보육교사 과정에 그런 과정 또 어머니회에 아이들 교육 과정 이것을 병행해서 글로벌 리더를 양성해야 될 것 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농촌이 여기 보세요. 저기한번 보세요. 교수가 여기 들어와서 양옥집을 짓고 삽니다. 여기 나 혼자 살다시피 한 거에요. 살던 사람도 다 떠나고 길 다 없어서 홍수지면 못 다니니까. 여기 두 분 오신분이 다 증인이야. 그러니까 아직도 산촌 개발에 대해서 무한한 개발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웰빙 산업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그 과정도 새마을 연수원에 다시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웰빙 산촌을 개발하고 앞으로 국내 개발자원 외국 광관자원을 유치할 것이냐. 여기에 착안을 해야합니다. 현장으로 가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