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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대한민국의 무형자산인 새마을운동을 역사적 기록으로 길이 남기고자 새마을운동 추진 당시 각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증정으로 받은 자료입니다.
문. 새마을운동의 시작은 어떻게 될까요?
답. 새마을운동의 출발은 얘기하자면 상당히 깁니다마는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 갔을 때 제가 통역관으로 같이 갔습니다. 정상회담을 하면서 독일 에르하르트 수상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독일의 경제발전상, 히틀러가 독일 경제를 만들어온 역사적 배경을 설명하면서 독일의 농촌신운동 얘기가 나옵니다. 독일 농촌은 영주제도가 있어 가지고 농촌끼리 서로 싸우고 했다는 역사적 배경을 얘기하면서 자기가 라인강의 기적을 만든 것이 아니고 최초 독일의 경제발전은 지역 간에 싸움을 말리고, 지역 간에 협동하고, 지역 간에 자조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역할을 한 히틀러가 독일 라인강의 기적은 만들었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박정희 대통령에게 독일 농촌에 가서 역사의 현장을 보시라고 한 것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제가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10일간 독일에서 통역을 했는데, 독일의 아우토반을 타고, 독일의 고속도로를 타고 독일의 농촌 현장에 직접 가서 현장에 있는 지도자를 만나 가지고 독일의 농촌운동이 전개된 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감동을 많이 받고 돌아서서‘조국에 돌아가면 독일이 라인강의 기적을 만든 것처럼 우리도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야겠다, 상호간에 협동하고, 자조하고, 서로 믿고 농촌을 근대화시키는 정신적 토대를 만들어야 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신적 토대로서의 독일의 농촌신운동 그것이 바로 새마을운동입니다.
문. 당시 독일에 상황은 어떠했었나요?
답. 독일은 각 지방마다 영주제도와 군대가 있었습니다. 돈 많은 지주들이 군대를 사조직해서 지역 간에 전투를 했고 싸움을 했습니다. 미국에 남북전쟁이 있듯이 독일은 각 지방마다 영주제도가 있어서 농촌을 착취하고 농촌을 노예를 만들고 이런 봉건주의적 영주제도가 있었습니다. 이 기틀을 근본적으로 정신적 혁명을 만든 것이 농촌신운동을 전개해서 히틀러가 이룩한 운동입니다. 그 운동이 2차 대전 이후 계속해서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 가는데, 에르하르트가 장관을 할 때 농촌신운동을 끊임없이 전개시키고 지역 간에 협력기반을 다진 것이 라인강의 기적의 원동력으로 현장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체험을 했습니다.
문. 당시 우리나라 농촌의 상황은 어떠했었나요?
답. 박정희 대통령이 여러 번 하신 말씀이 우리가 돌아가서 한국도 독일처럼 농촌신운동을 전개해야겠다. 신운동이라고 하지 말고 우리는 농촌의 새로운 운동을 하기 때문에 새마을운동이라고 해야겠다라는 말도 거기서부터 생각을 했습니다. 그 당시 우리나라 경제는 제가 대학을 다닐 때로, 6.25동란이 끝나고 한국을 재건하기 위해서 UN이 운크라(UNKRA.국제연합한국재건단)라는 시찰단을 보냈는데, 단장이 미시다메노이라는 인도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보고서를 만들었는데, 제목이 ‘한국에서 경제개발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과 같다’, 희망이 없는 나라다, 농촌끼리 싸움만하고 서로 가난하고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한국은 경제 자립심이 없다, 이것이 당시 우리나라 현실이었습니다. 이승만 정권이 무너지고 4.19혁명 이후 박정희 대통령 정권이 들어서면서 조국을 근대화시키기 위해 서독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서독경제발전과 라인강의 기적을 보고, 한국에 가서 한강의 기적으로 만들고, 그 정신적 지주를 새마을운동으로 가자는 결심을 그때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 한국산업개발연구원에 설립배경은?
답. 박정희 대통령을 모시고 독일에서 10일간 통역을 하면서 독일 라인강의 기적을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제가 1955년 독일에 유학을 가서 학위를 받아가지고 귀국을 했기 때문에 독일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통역관으로 뽑혔고, 경제개발1차 5개년계획을 제가 작성하고 2차 5개년계획을 만들어 놓고 독일에 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저를 아주 친하게 생각을 해서 한국에 돌아가면 독일처럼 우리도 만들자고 저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연구소를 하나 만들어서 독일처럼 우리도 경제개발을 하는데 국가를 위해서 일해 달라고 해서 제가 1965년 2월 2일에 청와대 옆에 경복궁 뒤에다 연구소를 차렸습니다. 당시 중앙대학교 교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대학교 부설연구소인 산업경제연구소로 우리나라 최초의 연구소로 출발을 했습니다. 우리가 한 최초의 작업이 독일에서 배워온 경부고속도로의 타당성조사, 국토개발을 위해서 수자원개발공사, 우리나라 한강 이남이 그 당시 비가 오면 전부 홍수입니다. 홍수를 막고, 수자원개발을 하기 위해서 소양강댐을 만들었습니다. 일본에서 배운 지식으로 원래 일본 사람이 했어야 할 일인데, 우리나라가 식민지이기 때문에 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악지대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것이 수자원관리입니다. 수자원관리를 하기 위해서 소양강댐, 팔당댐을 우리나라 최초로 수자원개발공사를 했는데, 그것을 우리 연구소에서 만들었고, 경부고속도로의 타당성조사도 우리가 했습니다. 정부가 실제 경험이 없기 때문에 독일 현장에 가서 공부하고 체험한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 연구소에 청와대에서 하는 프로젝트 용역을 주어 가지고 우리나라가 개발된 최초의 모든 사업을 우리가 시작했습니다.
문. 우리나라 근대화에 있어서 경제개발계획과 새마을운동의 역할은?
답. 박정희 대통령이 제1차경제개발5개년계획부터 시작을 했는데, 시작을 해도 국민적 정신혁명이 없었습니다. 특히 농촌을 일으켜야 하는데 농촌사람이 경제를 알지 못하고는 도저히 농촌개발이 안 되기 때문에 정신교육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범국민적으로 농민들에게 새마을 정신을 획기적으로 주입을 시켜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수원에 새마을 연수원을 만들어서 교육을 시켰습니다. 최초에 공무원들부터 교육을 받으라고 해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 전부 교육을 시작한 것이 우리나라 새마을운동의 출발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 조국근대화의 가장 핵심이 새마을정신입니다. 새마을정신이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경제 및 농촌이 발전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새마을운동이 70년대 초부터 본격화했는데, 그때 지방에서는 경상도다, 전라도다 하면서 서로 지역감정만 대립하던 때였습니다. 새마을정신을 가지고 너와 내가 없이 우리만 있고, 우리끼리 조국근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농촌을 방문하면서 새마을운동을 보급시키는데 앞장서서 지역에서 협력을 했습니다. 정부에서도 박정희 대통령을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독일에서 배운 경험을 가지고 국내의 정신적 토대를 만들고, 협동화 정신을 전 국민에게 확대해서 가리키고 현장교육 하는 것이었고, 저는 박정희 대통령님의 그런 모습을 옆에서 참으로 감동스럽게 보았습니다.
문. 새마을운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한 과제는?
답. 중요한 하나의 자료가 2차대전 이후에 식민지로부터 147개 국가가 독립을 했습니다. 146개 국가는 지금도 일인당 GNP 2천불도 안 되는 후진국입니다. 한 나라만인 우리가, 한국만이 일인당 GNP 2만 달러로 올라와서 경제 10대강국이 되었습니다. 세계사에 이런 예가 없습니다. 전 세계가 한국을 배우려고 노력을 합니다. 전 세계가 한국역사를 배우면서 새마을운동 정신이 한국경제를 이렇게 만들었다 생각해서 지금 전 세계가 한국학과가 생겼습니다. ‘코리아 스터디(KOREA STUDY)’ 한국을 배우자 하는 학과가 있습니다. 독일의 몬대학에 갔더니 몬대학의 한국학과에 독일학생이 300명입니다. 선진국도 한국학을 공부하고 후진국도 전부 한국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이 오늘날 한국을 일으킨 가장 중요한 것이 5가지이다. 이게 한국학의 내용입니다. 첫 번째, 한국문화의 혁명입니다. 한국 문화의 혁명은 바로 새마을정신입니다. 한국의 새마을정신, 우리 문화의 독창성은 3가지가 있다. 첫째는 우리 문화는 가난의 한이고, 두 번째 우리 문화는 혼이 있고, 세 번째 우리 문화는 신바람입니다. 신바람이 어디서 나왔느냐, 바로 새마을 정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두 번째 우리의 발전 요소는 충효사상(忠孝思想)입니다. 한국처럼 가정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없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의 힘이고, 우리 가족의 힘으로 우리 가정은 흩어지지 않습니다. 세 번째는 우리의 교육열이고, 네 번째는 우리의 기업가 정신, 다섯 번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청소년의 조직력과 단결력 이 5가지입니다. 이 정신이 어디서 왔느냐고 선진국에서 배우러 옵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의 새마을운동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이 한국의 모델을 전 세계에서 배우려고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바뀌어 나가고 있습니다. 작년에 G20 의장 국가를 했고, 세계를 도와야 할 임무가 있고, 책임이 있습니다. 전 세계 원조를 받아서 큰 나라이기 때문에 후진국을 원조해 주고 도와줘야 할 때가 왔습니다. 새마을정신을 세계화 시킬 수 있는 그런 단계에 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국 근대화의 역사, 바로 새마을의 역사를 후진국에 가르쳐주고 본격적으로 전 세계에 들어 갈 수 있는 리더국가로, 선진국가로 새마을운동이 선진화해야 한다고 또 세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가 오늘날 참으로 문제가 많습니다. 새마을운동을 전개해서 2만 달러로 올라왔는데 앞으로 3만 달러, 4만 달러로 가야할 텐데,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5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5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고민해야 합니다. 첫째, 세대 간 가치관이 충돌했습니다. 물질의 풍요만을 아는 젊은 세대와 우리들이 가난할 때 새마을운동을 하던 세대와 가치관이 맞지 않습니다. 가치관이 충돌했습니다. 지금 텔레비전 방송을 보십시오. 전부 사치, 낭비, 허영을 광고에 붙이고 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텔레비전에 광고하지 못하고, 지금도 새마을정신을 하고 있습니다. 농촌에서 절대 광고를 못합니다. 우리나라는 외래화가 상업화 되었습니다. 건전한 운동교육을 시켜야지 그렇지 못하면 새마을운동의 역사를 지키지 못합니다. 둘째, 갈등병이 심각합니다. 노사 간에 싸움하고, 빈부의 싸움을 하고, 젊은 세대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갈등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2만불에서 3만불로 올라가는 새로운 단계에서 새마을정신을 모든 사람이 챙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 문제는 우리 공무원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입니다. 공무원들이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그 당시 개발연대 초기에 공무원들이 새마을정신을 보급시키는데 얼마나 애를 썼습니까. 지금 공직자들에게 미안한 얘기지만 지금 서민들이 여러 가지로 얼마나 불만이 얼마나 큽니까. 이렇듯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 다시 새마을정신으로 돌아가 국민에 대한 서비스, 국민에 대한 공복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로, 지금 중산층이 심각합니다. 중산층이 지금 몰락하고 있습니다. 과거 가계부채가 엄청나게 커가고 있습니다. 경제발전의 중심은 중산층입니다. 독일경제는 중간규모의 안정, 중산층 보호를 우선으로 합니다. 중산층은 경제의 허리인데, 우리나라 중산층은 지금 허약하고 가계부채가 많습니다. 이런 가계부채를 흑자가계로 만들어 줄 수 있도록 국가가 중산층 보호를 위해서 새로운 정신적 새마을운동을 제기시켜야 할 것입니다. 돈 있는 사람들도 자기가 돈이 있다고 큰 소리 치지 말고, 새마을 정신에 입각해서 못사는 사람을 도와주는 이런 운동이 전개되어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우리 국민이 전부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해외에 나가서 제멋대로 여행이나 하고, 세계적으로 값비싼 물건만 들어오고, 이런 정신적 타락 가지고는 국가가 발전할 수 없습니다. 돈 있는 사람부터 무관심 갖지 말고 다시 선진경제로 도약하는 새로운 새마을운동을 전개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도 다시 한 번, 지방자치단체도 다시 한 번 우리 새마을운동을 선진화시키고, 세계화할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다듬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당시 독일 현지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답. 1964년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 가게 된 동기는 참 눈물 나는 얘기입니다. 우리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독일에 가서 참 일을 많이 했습니다.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왜 독일에 갔느냐 하면 독일에서 돈을 빌리는데 담보할 수 있는 힘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부들과 간호사들이 독일에 파견되었고, 그 사람들의 월급을 담보로 독일에서 돈을 꾸어서 나라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독일에 간 우리나라 간호사들과 광부들이 일을 너무 잘해서 독일에 있는 모든 국민을 감동시켜 버린 것입니다. 독일 국회에서 가결이 되어 가지고 독일 6대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국빈으로 독일에 초청을 했습니다. 그것이 한국경제발전의 원동력입니다. 1964년 12월 5일 독일 6대 대통령의 초청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 가서 공부만 했습니다. 제가 당시 통역사로 10일간 따라다녔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저녁에 돌아가면 밤늦게까지 정리를 다하고, 농촌에 가면 농촌에 가서 움직임이지도 않고 현장에 가서 대화를 하고, 독일 사람들에게 물어보고 그 사람들에게 듣습니다. 독일의 오늘날 경제발전은 독일의 정신적 혁명에서 왔고, 독일의 가난한 농촌이 부강하게 된 것은 당시 독일의 농촌신운동 때문이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의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독일의 라인강의 기적이 바로 정신혁명에서 왔고, 농촌의 정신혁명이 없었다면 독일이 발전하지 못했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일의 수상도 박정희 대통령의 손을 붙잡고 독일의 농촌신운동을 얘기하면서 한국도 독일과 같이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신적 혁명이 있어야 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정신적 혁명이 없으면 경제개발이 안 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에 가서 독일의 역사, 정신적 혁명을 배우고, 밤에 호텔에 돌아와서 정리를 한 후 매일 저를 찾아서 그 당시 얘기를 반복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서 정신적 기틀을 배워가지고 와 우리나라에 보급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4년 12월 5일 독일에 갔는데, 놀라운 일이 몬비행장에 도착을 했는데 환영객이 전부 독일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독일에서 우리나라 광부들이 지하 1000M까지 내려가서 일을 했습니다. 지하1000M면 지열이 40도입니다. 더워서 못 내려가기 때문에 팬티만 입고 내려갑니다. 외국근로자들은 와서 일하다가 전부 도망을 갑니다. 그 험악한 지하에 가서 석탄을 캐는데 거기서 일했던 광부들이 전부 대학출신들이었습니다. 광부를 모집할 당시 고등학교 졸업생들을 모집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 실업자가 많아서 학벌을 속이고 지원을 해서 전부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렇게 독일에 취직해서 돈 벌러 갔습니다. 간호사들도 2,000명이 갔는데, 독일에 가서 정말 일을 많이 했습니다. 시골병원에 가서 죽은 시체 닦고, 눈물 흘리며 매일 일을 했습니다. 이것을 독일 사람들이 보고 감동을 받아 그 결과로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을 해서 독일에 간 것입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 가서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이 독일에서 광부들이 일하고 있는 광산 쪽이었습니다. 우리나라 광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위로하기 위해 광산촌에 갔는데, 문 열고 들어 갔더니 지하 1,000M에서 올라와 앉아 있는 500명의 광부들 얼굴이 새까맸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가자마자 눈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육영수 여사와 같이 박정희 대통령이 단상에 올라가고 대한민국 애국가가 나오니까 전부 울어버려서 합창이 나오지를 않았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만세!” 소리에 연설문을 읽으려고 한 박정희 대통령이 읽지도 못하고 울어버렸습니다. “여러분, 이게 무슨 꼴입니까. 여러분의 새까만 얼굴을 보니 제 가슴에서 피눈물이 납니다. 여러분 우리 합시다. 후세에 훌륭한 나라를 물려줍시다.”라고 하니까 광부들이 전부 일어나서 “대한민국 만세! 만세!” 소리뿐이었습니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광부들과 껴안고 육영수 여사도 껴안으면서 그 현장이 눈물바다가 되었습니다. 그때 박 대통령이 내가 우리나라에 독일정신을 가지고 돌아가서 새마을운동을 일으키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일정이 끝나면 숙소에 가서 새벽 2시 3시까지 기록을 했는데, 그때마다 저에게 얘기하던 말이 ‘돌아가서 우리 합시다. 반드시 우리도 독일처럼 라인강의 기적을 만들어서 우리도 한강의 기적을 만듭시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박정희 대통령이 눈물 흘린 그 장소가 항상 기억이 됩니다. 우리 연구소가 50년 역사인데, 우리 연구소는 지금도 국가를 위해서 새마을운동의 정신적 토대를 가지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순수한 민간연구원으로서 국가를 위해서 많은 일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서 만든 경제근대화, 경부고속도로의 타당성조사, 우리가 하고 있는 경제개발의 공업단지의 모든 창원, 여천, 울산, 구미의 공업단지 전부 독일에서 배워온 것입니다. 저희 연구원이 중심이 되어서 국가를 위해서 일 많이 있습니다. 이것을 보람 있게 생각합니다. 지금도 우리 연구원이 민간연구원으로서 세계에 빛나는 연구원으로 지금 발전하고, 약 80명의 직원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박정희 대통령이 뿌린 한민족의 역사를 세계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중심에 서서 일한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문. 당시와 현재 독일인들이 우리나라를 보는 시각의 변화는?
답. 2011년 12월 2일이면 독일경제협력 50주년이 됩니다. 최초에 우리 사설단이 독일에 간 것이 1961년 12월 2일입니다. 경제협력 당시 상공부장관이 사인을 해서 한국경제협력한 날입니다. 독일의 날을 기념해서 행사를 제가 준비합니다. 그 이유는 작년에 G20 의장국가할 때 제가 독일에서 대십자훈장을 받았습니다. 독일의 대사관저에서 독일의 여자 총리인 메르켈이 오셔서 제가 선물을 하나 주었습니다. 뭐냐하면 한국경제협력 50주년을 맞이해서 알밤을 예쁘게 포장해서 알밤을 선사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독일의 총리가 그것을 보시고 울어버렸습니다. 한국을 오늘날 잘 살게 만든 것이 자기 선배들이고, 독일 사람들인 것을 알아야 하는데, 독일 국민들이 모른다는 것입니다. 메르켈 총리가 독일로 돌아가서 연락이 왔습니다. 2011년 12월 2일에 독일에서 한국의 날을 선포한다고 합니다. 독일 국민에게 알리고, 소개를 해야 하겠다고 저한테 독일에 와서 연설을 해 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날을 기해서 서울에서 독일의 날을 우리가 선포해서 예약도 하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독일은 독일에서 한국의 날을 선포하고, 우리는 여기에서 독일의 날을 선포하기로 한 것입니다. 우리나라에 500개의 독일기업체가 와 있고, 독일 사람들 3,000명이 와 있습니다. 이 사람들과 손잡고 이제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나라는 구라파에서는 독일, 극동에서는 한국, 서로 손잡고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파트너로서 같이 힘을 합쳐서 일궈 나갑시다 라는 운동을 이번에 크게 합니다. 쉽게 얘기하면 그 당시 50년 전에 독일이 안 도와줬더라면 우리는 오늘날 잘 살지 못합니다. 물질적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한국경제협력 50주년이 되는 올해 새마을정신을 다시 재조명하고, 이제 우리가 세계를 이끌어 갈 수 있는 국가로서 한민족으로 나갈 수 있는 정신적 토대로서 새마을정신의 세계로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 새마을운동을 세계화할 수 있는 방향은?
답. 우리나라 경제발전상을 보기 위해서 여러 후진국에서 많이 옵니다. 해방 이후 147개 국가가 식민지가 되어서 해방되었는데 지금 146개 국가는 그냥 멈춰있습니다. 1인당 GNP가 2불이 안 됩니다. 우리나라만이 2만 달러로 올라왔습니다. 한국이 세계적인 모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배우려고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새마을 교육만 시키는 그런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후진국을 원조해 주는 정신적 기반으로 우리가 더 적극적으로 세계를 향해서 못사는 나라에게 원조를 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받은 원조를 이제는 주는 나라, 베푸는 나라로 현지에 가서 새마을교육을 해 주고 우리 경제발전 모델을 현장에서 도와주는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그 다음에 우리의 기업인들이 찾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국토가 좁습니다. 세계지도를 깔아놓고 보면 우리 한반도 면적이 0.075%입니다. 0.1%도 안 됩니다. 그 중 70%는 산입니다. 이용할 수 있는 땅은 2만평방도 안 됩니다. 이 좁은 땅에서 작년에 4,900억 달러를 수출했습니다. 그럼 1조가 넘습니다. 전 세계가 놀랍니다. 아프리카 대륙이 52개 국가로 인구는 28억인데, 작년에 4,900억 달러 수출을 했으면 전체 아프리카 2배입니다. 아프리카 사람들이 놀랍니다. 이 힘을 우리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해야 합니다. 좁은 국토 가지고 세계화 시대를 우리가 열어가야 합니다. 우리 국토가 한국뿐만이 아닌 세계를 우리 국토로 생각해서 새마을정신이 세계화를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우리 국민은 물론 국가적 하나의 큰 테마로서 세계가 한민족 씨에 열려 있는 한류의 힘을, 세계에 보급시킬 수 있는 힘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가난할 때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지만, 새마을정신이 없었더라면 우리도 그 돈을 다 써버리고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돈을 가지고 박정희 대통령 밑에서 충실히 경제개발을 했기 때문에 세계를 이끌어갈 수 있는 국가가 된 것입니다. 그 모델이 세계 다른 나라에 전파되는 것이 나의 소망이고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