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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인터뷰는 대한민국의 무형자산인 새마을운동을 역사적 기록으로 길이 남기고자 새마을운동 추진 당시 각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의 생생한 기록들을 증정으로 받은 자료입니다.
문. 새마을운동에 참여하시게 된 동기는?
답. 부녀회장을 뽑는다고 해서 저도 참석을 하게 되었고 투표를 통해서 제가 회장으로 당선이 되었습니다. 당시는 박대통령이 새마을사업을 많이 활성화를 시켰는데 농협에서 부녀부장이 와서 혼수사업을 해 보라고 했고 사업소에 가서 냉장고, 장롱 등을 가져오다보니 용기가 생겼고, 그때부터 농협 때문에 사업을 더 열심히 하게 되었습니다. 구판사업도 하고 벼, 호박재배, 참깨, 고구마 등 농사를 지어 양주군에서 상장을 받게 되었는데 식구들이 잘했다고 했고 남편도 잘 밀어주었습니다. 하나하나 일을 추진하니 사람들도 잘한다고 회관에서 박수도 쳐주었고 더 열심히 해서 다음에는 장관상도 타야 되겠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회관도 짓고 도서관에 독서실도 만들었고 또 가족계획을 잘하면 당시 15만 원을 주었는데 가족계획을 잘한 10명에게 15만 원씩 가져다 줄 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농촌지도소에서 저에게 떡방앗간을 해 달라고 하며 방앗간을 지어주어 일을 하게 되었는데 방앗간 일을 하면서 돈이 많이 생겼고 중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야겠다고 생각에 4명의 아이에게 10만 원씩 3년 동안 주었습니다. 지금까지 사업을 한 것이 많으니 회암리를 시범마을로 만들도록 노력하자고 할 즈음에 당시 농촌지도소 소장이 저희 집에 와 있었는데 그 분이 마을에 와 계시니 모든 일이 더 잘되었습니다. 3천평의 논에 벼가 누렇게, 보기 좋게 익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벼가 다 묻힌 적이 있었습니다. 고생해서 농사를 지었는데 벼가 묻혔다고 저는 땅을 치면서 울었고 농협에서 사람들이 나와 벼를 거두어주었는데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더 일을 하기 싫었지만 그 일로 도지사 표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끝까지 우리 마을에 새마을운동을 활성화를 시켜서 대통령상까지 받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호응을 잘해 주어서 그 이듬해 4천평 농사를 지었고 농사가 정말 잘 되어서 그 이듬해 또 5천평을 지었습니다. 당시 남편이 다리가 다쳤는데도 목발을 짚고 가서 양수기로 물을 퍼내면서 모를 냈는데 눈이 많이 와서 묻혀 또 통곡을 하고 울었습니다. 그래도 동네사람들이 저를 잘 따라주고 일을 잘 한다고 알아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도지사상, 군수상도 많이 받고 전두환 대통령상까지 받았습니다. 저에 대한 비(碑)도 세워주었습니다. 소년가장도 도와주고, 합동결혼식도 하고, 회갑연 못한 사람들 회갑연도 해 주고, 어른들 효도관광도 보내드리는 등 열심히 해서 95년도에는 김영삼 대통령 자조대상도 받았고, 새마을과 여성단체회장을 겸직했는데 경기도에서 봉사여인상도 받았습니다. 참깨, 들깨, 고구마도 심고 우리 밭에 배추를 심어 7개 읍면에 부녀회장들에게 오라고 해서 김치를 담아 사람들에게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문. 새마을운동에 대한 정부나 마을에 분위기는?
답. 정부의 분위기는 협조가 잘 되었습니다. 정부에서 제가 돈을 받은 것은 없는데 행정에서도 많이 도와주었고 주민들도 저를 많이 따라주었기 때문에 제가 단체장을 한 것 같습니다. 이병인 과장님이 제가 일을 한다고 하니까 자료를 버리지 않고 저에게 가져오신 것을 보고 너무 고맙고 죽어서도 잊지 못할 사람이라고 남편에게 얘기도 많이 했습니다. 또 제가 이사를 가려고 했는데 마을주민들이 회의를 해서 30년 넘도록 봉사하고 일을 했는데 어디로 가느냐고 했습니다. 당시 1,250평으로 집을 지으려고 했는데 고속도로가 나면서 1,100평의 땅이 들어가게 되어 집을 지을 땅이 없었습니다. 더 봉사를 하라고 노인회장을 시켜주어서 집을 짓고 살아야겠는데 여기는 땅이 없으니 집을 짓기 위해서 길을 좀 내달라고 했더니 아무 소리 하지 않고 길을 내주었습니다. 그래서 3년 동안 노인회장을 보고 있는데, 마을 노인들은 제가 통일쌀을 놓고 다른 품종이라고 얘기를 해도 호응을 하고 지금까지도 저를 따라줍니다. 면사무소에서도 저에게 전화가 와 무슨 일을 해야 하니 인원동원을 해 달라고 합니다. 3년 동안 역임을 해서 그만두려고 했는데 저 말고도 할 사람이 없다 해서 지금 다시 노인회장직을 맡은 지 3개월이 되었습니다.

문. 주로 추진하셨던 새마을운동 사업은?
답. 처음에는 집 마루에 구판사업을 차렸는데 잃어버리는 것이 많습니다. 한번은 제 아들이 부엌개량, 화장실개량, 집개량하고 시범마을이 되어서 날마다 시청직원들이 집에 오면 밥도 해 주면서 우리는 학교 갈 때 굶고 갈 때도 있다며 엄마는 일만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아들에게 내가 아무 말 안하고 있고 엄마가 한다고 하는데 왜 네가 나서냐 그런 소리 하지 말라고 했더니 아들이 지금까지도 그만두라는 소리를 안 합니다. 남편 때문에 사업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남편이 양수기를 틀어놓고 논에 가서 밤을 새웠는데 다리가 다쳐서 목발을 짚고 일을 하니 부부가 열심히 일을 한다면서 부부가 동네를 살리려고 열심히 일을 하니 도와줘야 된다고 하면서 동네사람들이 경운기 4~5대를 가져와 논 4천평 농사를 도와주었습니다. 남편이 아니었으면 일을 못했을 것입니다. 경기도의회에서도 상을 받을 때도 도회장이 양복을 두벌 맞춰 와서 그 옷을 입고 상을 받으러 갔습니다. 군부대에 김치를 담가주기 위해서 우리 밭3~4천평에 배추도 심고 고추도 심었는데 고맙게도 총무부부가 아침 일찍 와서 우리를 많이 도와주어서 더 열심히 했습니다. 고추가루 300근을 빻고 무도 심고 해서 김장을 했는데 지금 부녀회장들에게 하라고 하면 그렇게 못 할 것입니다. 그때 같이 일을 한 사람들에게도 고마움을 느끼지만 제일 고마운 것은 총무입니다. 일도 잘 도와주었는데 저를 도와서 10년 8개월간 총무 일을 해 주었습니다. 저는 국민학교만 졸업을 해서 학력이 짧고 또 팔을 다쳐서 팔을 사용하기가 여의치 않은데 그 팔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일을 했습니다. 지붕개량, 부엌개량, 화장실개량을 하고 집을 6채 정도 새로 지었고 마을회관을 새로 지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을회관 짓는데 여자가 나선다고 하면서 10원짜리 하나 걷어가면 가만 안 놔둔다고 했지만 10원짜리 한장 안 걷고 건립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을회관으로 길이 난다고 돈이 나와서 회관을 새로 지었습니다.

문.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답. 처음에는 인원동원 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하나 둘 일을 하면서 장학금까지 주니까 사람들이 신임을 했고 그 후에는 잘 따라주어서 힘이 들지 않았습니다.

문. 어려웠던 점을 극복하는 방법은?
답. 남편이 아니었으면 극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람은 참으면 잘 된다고 하면서 남편이 용기를 주었고 또 행정에서도 과장님이나 총무가 잘 도와주어 더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일을 한 것 같습니다.

문.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시행착오가 있었다면?
답. 여러 가지 사업을 통해서, 또 농사를 통해서 필요한 것은 얻었고 저희가 미역장사, 김장사를 한 밑천으로 1년에 210가구 김장을 해 주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도와주었습니다. 김장을 했다고 하면 읍사무소에서 차가 왔고 부녀회장들이 김장김치를 배달을 했습니다. 남편이 옆에서 열심히 하라고 도와주니 어려움이 있어도 할 수 있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엄마는 매일 나가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많이 안 좋았을 것입니다. 딸이 엄마가 봉사에 미쳐 밥도, 집안일도 딸이 해야 하니 그 집에는 가지 말자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할 때 제가 많이 울었습니다.

문.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아쉬운 점은?
답. 행정에서 많이 도와주었고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으로 일을 했기 때문에 아쉬운 점은 많이 없었습니다.

문. 새마을운동을 하면서 보람있었던 일은?
답. 여성단체일로 대통령상도 받고 자조장도 받게 되니 고생했지만 보람됐고 또 남편이 도와주어서 이런 자리까지 왔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저는 죽어서도, 또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새마을운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 새마을지도자로서 자부심이 있다면?
답. 경기도에서 최우수상으로 시계를 받았는데 제가 고생했으니 저희 집에 놔야 한다고 시계를 저희 집에 가져다 주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을 사람들이 알아주고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온 것 같습니다.

문. 새마을지도자로서 애로사항이 있다면?
답. 처음에 새마을운동을 할 때는 사람들이 참여를 안 해주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에게 신임을 받으니 용기가 생기고 자부심도 생겼습니다.

문. 새마을지도자로서 자신을 평가한다면?
답. 사람들이 도와준 덕분에 된 것이지 저만 잘해서 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들에게 항상 고맙게 생각합니다. 단체에서도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국민학교만 졸업한 저에게 일을 맡겨주신 과장님 덕에 제가 용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문. 새마을운동 전과 후에 바뀐 점이 있다면?
답. 제가 회장을 하기 전에는 보리밥을 먹고 개떡을 쪄서 먹었는데 새마을사업을 하면서부터는 보리밥을 해 먹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녀회에서 부추농사를 해서 마을사람들과 다듬어 가락동시장에 내다팔기도 하고 신문을 부치는 사업도 했고, 또 윷놀이도 상품을 내걸고 했더니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제가 그만큼 열심히 하고 사람들이 도와주니까 사람들도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제가 노인회장을 다시 맡아서 하고 있는데 남편의 덕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는 마을에 분위기도 안 좋았는데 지금은 마을회관에 모여서 얘기를 하면 저로 인해서 분위기가 좋아지고 단합도 잘 된다고 합니다. 밥먹을 때는 안 나와도 폐품 쓰레기를 주우려고 제가 나오라고 하면 잘 나옵니다. 저희 집에서 식사 등을 준비해서 2박3일 효도관광도 가는데 조금씩 돈을 걷고 정부에서 조금 나오는 보조금을 보태기도 합니다.

문. 새마을운동에 대한 정부나 공무원들의 지원은?
답. 제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도와준다고 하고 저에게 잘했다고 얘기를 하니 용기가 생겨서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됩니다. 당시에 공무원들은 너무 잘 도와주었고 그때 시기를 잘 타고 난 것 같습니다. 지금 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문. 후배들이나 국민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은?
답. 새마을지도자가 되어 내 지역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면 좋은 일이 있으니까 저처럼 되라고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